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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과 정원 표지
인문 Humanities

텃밭과 정원

나만의 신화를 세우는 추상의 힘

나만의 신화를 세우는 추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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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About this book

인류가 걸어온 가장 거대한 정신의 여정을 추상이라는 한 단어로 꿰는 책입니다. 최진석 교수는 바빌론과 이집트가 남긴 방대한 기록이 생존의 장부에 머문 반면, 고대 그리스인이 끌어낸 추상은 세계를 설계하는 도면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텃밭을 기록하는 시선과 정원을 설계하는 시선의 차이입니다. 왜라는 질문이 추상의 사다리를 놓고, 그 사다리를 오른 사람만이 타인의 각본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입법자가 된다고 봅니다.

사양 Specifications

분야인문 Humanities
지은이최진석
옮긴이
발행일2026.09.10 · 퍼블리온
쪽수·판형256쪽 · 128×188mm
ISBN9791191587968
수상·선정

목차 Contents

  1. 들어가며
  2. 제1부 시선의 높이: 대지에서 하늘로
  3. 1장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4. 2장 시선의 높이를 결정짓는 동력, 추상
  5. 제2부 경험의 밧줄과 기하학의 공식: 설계자의 탄생
  6. 3장 추상의 사다리: 텃밭의 기록자에서 정원의 설계자로
  7. 4장 ‘왜’라는 질문이 만드는 추상의 사다리
  8. 5장 사물의 노예가 될 것인가, 구조의 주인이 될 것인가
  9. 6장 승패를 가른 시선의 높이: 기록원의 성실함인가, 설계자의 추상인가
  10. 제3부 주인의 자리: 실존적 가치의 구조
  11. 7장 의미를 구하지 말고 부여하라: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실존적 추상
  12. 제4부 문명의 광장과 사유의 도약: 세계를 입법하는 자들
나머지 9줄 더 보기
  1. 8장 생존의 영토를 확장하는 문명의 사거리와 지적 주도권
  2. 9장 사유의 마찰열: 태양의 원리로 진입하는 고통에 대하여
  3. 10장 역사적 분기점: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시선의 전이
  4. 11장 추상의 사다리를 오르게 하는 동력: 인문, 여행, 그리고 예술
  5. 12장 주인이 된 개념, 손님이 된 이름: 경험의 중력과 초월적 추상
  6. 13장 문명은 사유의 결과물: 사유의 도약 없이 삶의 도약 없다
  7. 제5부 입법자의 존엄: 지적인 자의 자쾌(自快)
  8. 14장 타인의 각본대로 소비될 것인가, 내 삶의 설계자로 입법할 것인가
  9. 나가며

저자 소개 About the author

저 : 최진석

실존적 주체성과 추상의 사유를 역설해 온 철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다. 전남 신안 장병도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함평에서 보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석사학위를,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당대(唐代) 성현영(成玄英)의 중현(重玄) 사상을 바탕으로 장자 철학을 연구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노장(老莊) 철학의 지평을 넓혔다. 2015년 독립 전인교육기관 <건명원(建明苑)>의 초대원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고자 대학 강단을 떠나 사회적 실천의 길로 들어섰다. 2020년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을 출범하고 함평에 기본학교를 건립하여 청년들의 사유 근육을 단련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학자로서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대한민국 사회의 질적 도약을 위해 사회적 실천가로서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현재 강연과 유튜브 <최진석의 새말새몸짓>, 활발한 저술로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편집자·대표의 말 Why we published this

최진석 교수의 책을 퍼블리온에서 내게 되었습니다. 원고를 받고 가장 오래 붙들었던 것은 제목이었습니다. 텃밭과 정원. 둘 다 무언가를 기르는 자리인데 하나는 눈앞의 소출을 기록하고 다른 하나는 전체를 설계합니다. 이 차이가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철학책이지만 사변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바빌론의 점토판과 그리스의 기하학을 나란히 놓고,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도 왜 한쪽만 문명의 설계도를 얻었는지 묻습니다. 그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돌아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각본대로 살 것인가, 내 삶의 설계자가 될 것인가. 이 물음을 견디는 독자에게 권합니다.